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페인 내전 (문단 편집) === 국제적인 연대를 통한 지원 === [[파일:/image/020/2009/05/16/200905160037_0_20090516052902.jpg|width=500]] 요약하자면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가 잘 묘사하고 있는 분위기지만 1930년대 파시즘의 세계적 연승을 두려워하던 전 세계의 좌파와 자유주의자, 공화주의자, 민주주의자들은 1936년 7월 쿠데타를 막음으로써 '''[[만주사변|만주]]에서 [[나치 독일|독일]],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에티오피아]]에서 [[철위대|루마니아]]까지 국제 파시즘 세력의 연승 행렬을 막은 것처럼 보였던''' 민주 스페인에 열광적인 심적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이들의 지지는 '''전쟁에서 이기는 데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정신적, 문화적 연대''' 정도에 불과했거나 아니면 개인, 잘해봐야 정당 차원에서 직접 가서 싸우다가 죽는 이상의 파급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반대로 이때까지만 해도 열강 정부들은 파시스트가 정권을 잡는 사태보다는 '''[[남유럽]] [[지중해]]의 [[소련]]이 탄생하고 [[스페인어|언어]], [[가톨릭|문화]]가 직접적으로 연결된 [[중남미]]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을 더욱 두려워하였다.''' 결국 열강 정부들은 '''쿠데타 세력을 직간접적으로 지지하거나 국내 다른 세력들이 이들을 지지하는 걸 방조함으로써''' 프랑코와 파시스트들이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어이없지만 당시 민주주의 열강 정부들은 자본주의를 용인하는 파시즘보다는 자본주의를 완전히 부정하는 공산주의를 더 위험한 세력으로 보고 있었다. 바이마르 공화국이 베르사유 조약의 배상금을 내지 못해 헐떡일 때 미국과 영국이 배상금을 감면해 준 것도 바이마르 공화국의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독일 공산당이 10%가 넘는 득표율로 득세하기 시작하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이딴게... 민주주의?-- 상술한 것처럼 전쟁 초기 공화군과 국민군은 어느 한 편이 절대적으로 우세하다고 말하기 힘들었다. 공화군은 수적 우위와 혁명에 대한 열기라는 점에서 우세를 점했지만, 당시 스페인군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돌아가는 전투 부대였던 아프리카 군단이 국가주의파 측에 있어 군사적으로는 박빙 상태에 있었다. 쌍방에 제공된 무기들의 경우 다른 건 제쳐두고 대충만 따지면 항공기나 조종사들 질은 국민진영이 훨씬 나았고[* 심지어 구형기들조차도 공화진영측 신형기들을 상대로 공세를 걸고 이들이 도망치는 경우도 많았다.] 전차는 공화진영이 훨씬 나았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1936년 가을, 국민군의 진격이 마드리드 방어전에서 막혀 버리고 원래는 일시적 '쿠데타'였어야 할 충돌이 장기적인 '내전'으로 확대되면서 후안 야구에는 지금 상황에서 공화군이 역습을 가하면 바로 털려버린다고 심각한 걱정을 표했고 공화파 대통령 아사냐는 반대로 "주요 공업 지대, 대도시는 다 우리 편에 있는데 저들(국민파)이 어찌 전쟁을 지속한단 말인가?"하며 자신감을 표했다. 그러나 국민파가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 왕국|파시스트 이탈리아]], 그리고 [[이웃나라]]인 [[포르투갈 제2공화국]]의 노골적 지원을 받고 있던 데 반해 공화파는 외부의 지원을 거의 받지 못했다. 분명 공화파가 합법적으로 선거를 통해 당선된 합법 정권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민주국가들에게 제대로 된 지원은커녕 방해만 받았다. 결국, 스페인 내전의 운명은 결국 스페인이 아니라 강대국들의 외교전 사이에서 결정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